“평범한 한인들이 일궈낸 승리”
한 나라 한 민족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는가? 질문의 의도는 분명히 있다. 가끔씩 나타나는 영웅들이 세상의 흐름과 방향, 운명을 바꿔갈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는 사건들이 최근 미주한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병기법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버지니아주 의회에서 통과된 미 공립교 교과서 동해병기 의무화 법안은 분명히 풀뿌리 민초들이 일궈낸 큰 업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막대한 돈을 들여 로비를 노골적으로 벌이면서 한일 두 나라의 자존심 싸움으로 커지고 덩달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지만 그 중심에 선 것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는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한인 시민들이었다. 피터 김 VoKA 회장이 “버지니아주 한인들이 해냈다”고 말한 것은 겉치레 인사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생업을 잠시 뒤로 하고 멀리 의회를 찾아 목소리를 높이고 의원들을 압박하는 수고를 마다않던 애국자들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파도를 일으키고, 끌 수 없는 불을 붙인 건 물론 피터 김 회장이다. 많은 절벽에 부딪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는 ‘미주한인역사 111년’ 동안 ‘한인들만을 위한 이슈로 주의회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잘 끝날 것 같던 캠페인이 골리앗 같은 일본 로비를 맞닥뜨리면서 좌초 위기를 겪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스토리는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피터 김도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그는 지역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주지사 후보들까지 움직였다. 승산이 없어보이던 싸움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기막히게 역전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아무리 두드려도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백악관의 문을 연 것도 김 회장의 집요함과 함께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 틈새를 노려 가능했다. 우연한 인연들과 행운, 설정된 목표를 끝까지 붙드는 집념, 세심한 관련 정보 및 자료 관리 등등 반드시 이기기 위해 꼼꼼히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 가는 그를 주변에서 지켜 본 사람들은 “피터 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할 뻔 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런 게 그가 왜 아이들 교과서에서 사라진 동해라는 이름에 집착하게 됐을까?아들과의 우연한 대화가 심기를 크게 자극하면서였다. 버지니아한인회의 임원을 맡고 있던 201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7학년이던 크리스와 얘기를 하던 중 한반도 오른쪽 바다의 이름이 미국 공립학교들이 사용하는 교과서에는 ‘일본해(Sea of Japan)’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존심이 팍 상하는 기분을 느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온 그는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잊었어도 ‘동해’라는 단어를 잊을 수는 없었다. 애국가 첫 소절의 첫 단어가 동해 아닌가? 한국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왜곡된 역사는 바로 잡아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가운데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베트남계 친구들의 조언을 듣게 됐다. 백악관에 청원하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청원 서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만5,000명 이상의 서명을 받으면 백악관이 의무적으로 그 사안을 놓고 회의를 하는 게 규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작업에 들어갔고 마침내 백악관 홈페이지에 동해와 일본해의 병기를 지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청원서를 올렸다. 그 때가 3월22일이었다. <이병한 기자·계속>
피터 김 VoKA 회장에게 듣는다 (1)
동해병기법안이 마침내 버지니아 주의회를 통과했다. 주지사의 최종 서명을 남겨두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미국 학생들에게 동북아시아 역사교육의 내용을 약간 바꿨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일 두 나라간 경쟁에서 통쾌하게 이겼다는 심리적 자부심을 넘어 한인사회의 정치력, 로비 수준이 몇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힘들게 배운 교훈들은 미주한인사회 전체를 위해 공유되고 보전돼야 한다. 이 생각에 동의한 동해병기캠페인 단체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의 피터 김 회장은 흔쾌히 지나온 일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본인도 언젠가 백서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등에서 동해병기 외에 한인사회 전체의 입지를 격상시키고 목소리 강화에 앞장서는 ‘정치 로비’ 세력 집성을 위한 논의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타 지역에서 성공적인 동해병기 캠페인을 위한 노하우를 묻는 협조 요청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몇 차례에 걸쳐 ‘드라마틱’ 했던 동해병기 캠페인의 숨은 얘기들을 연재하며 한인사회에 미친 파장을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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